- Special lnterview - 황정근 국회도서관장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법률, 정책, 입법 현장의 이면에는 방대한 지식정보를 수집하고 정제하여 국회와 국민에게 전달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바로 국회도서관이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임시수도 부산의 무덕전에서 직원 1명과 장서 3,600여 권으로 첫걸음을 내디딘 이 기관은 74년의 세월을 거쳐 오늘날 약 916만 건, 4억 5천만 면의 디지털 원문을 보유한 대한민국의 지식정보 최후의 보루(Last Resort)로 성장했다. 그 국회도서관을 이끄는 제24대 관장으로 2024년 12월 취임한 황정근 관장은 국회도서관 개관 이래 최초의 법조인 출신 수장이다. 판사 15년에 변호사 21년, 합산 36년에 걸친 법조계의 경험을 국회도서관이라는 새로운 무대로 가져온 그는 취임 이후 선제적 해외 입법정보 제공 체계 구축, NAIL(National Assembly AI Library) 프로젝트 가동 등 굵직한 혁신을 통해 국회도서관의 위상을 더 높은 곳으로 이끌고 있다. 성의정심(誠意正心)을 좌우명으로, ‘Readers Lead, Leaders Read’를 슬로건으로 삼은 황정근 관장의 경영 철학과 국회도서관의 미래 비전을 들었다.
국회도서관은 이름만 도서관일 뿐, 실질은 국회의 ‘공동 보좌진’과 같은 정보지원 기관이다. 300개 의원실 각각에는 보좌관과 비서관이 배치되어 있지만, 전 세계의 방대한 정보를 그들만으로 커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회도서관은 바로 그 빈자리를 채운다. 해외 전문 언어별 자료조사관과 의회 사서들이 각 의원실의 정보 요구에 대해 5일에서 일주일 내로 정확한 회답을 제공하며, 이러한 정보회답 업무만 연간 약 6천 건에 달한다.
황정근 관장은 “우리가 주는 정보는 진짜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라고 강조한다.
국회도서관 조직도에는 일반 도서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부서들이 자리하고 있다. 의회정보실과 법률정보실이 그것이다. 이들 부서는 국회의 입법 및 정책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의회정보서비스와 법률정보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조사하고 제공하는 고유한 기능을 담당한다. 국회전자도서관은 현재 약 916만 건·4억 5천만 면의 입법·정책 데이터를 디지털화해 보유하고 있으며, 연간 약 8천만 명이 접속한다. 황 관장은 이 방대한 정보가 “보고(寶庫)에 머무르지 않고 입법 현장에서 살아있는 정보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밝힌다.
요구하지 않아도 찾아주는 선제적 정보 제공, ‘금주의’ 시리즈의 탄생
황정근 관장이 취임 이후 가장 역점을 두어 온 것은 ‘선제적 정보 제공’이다. 기존에도 의원실에서 요구하면 정보를 제공하는 체계는 잘 갖추어져 있었지만, 요구하지 않아도 미리 세계의 최신 입법정보를 파악해 제공하는 체계는 부족했다. 그는 취임 후 이 부분에 집중적으로 힘을 기울였고, 그 결과물이 주간 발간물 ‘금주의’ 시리즈 5종이다. 금주의 신간(4면), 금주의 서평(2면), 금주의 보고서(2면), 금주의 Book Review(2면), 금주의 World Law(2면)가 그것으로, 최신 입법·정책 정보를 발굴해 핵심 내용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담아 국회의원과 보좌진의 책상에 매주 도달한다. 특히 ‘금주의 World Law’는 황 관장이 취임 후 신규 기획해 올해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발간물이다.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등 주요국의 최신 제·개정 법률정보를 매주 4건씩 선별해 제공한다. 의원실에서 관심을 갖는 법률이 있으면 전문 수백 페이지라도 번역해 제공하는 것이 국회도서관의 역할이다.
황 관장은 “일본의 경우 월보 형태로 외국 입법정보를 제공하는데, 우리는 매주 제공한다. 외국 최신 정보를 이처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의회도서관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라고 자부한다.
국가전략포털을 통해서는 세계 22개국 1,300여 개 국가기관과 싱크탱크의 주요 보고서를 실시간으로 수집하며, 이 중 매주 5건을 선별한 ‘금주의 보고서’도 발간하고 있다. 또한 국회도서관 소장 주요 외국 도서를 생성형 AI로 핵심 내용을 정리한 ‘금주의 Book Review’도 새롭게 시작했다.
황 관장은 “쟁점이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전에 주요국의 입법 방향을 미리 파악해야 시의적절한 대응을 준비할 수 있다”라고 강조하며, 선제적 정보 제공을 통해 국회의원들이 입법에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회도서관의 사명임을 역설한다.
NAIL 프로젝트, 세계 최초 ‘국회AI도서관’을 향한 도전
황정근 관장이 임기 동안 반드시 완성의 기틀을 놓겠다고 공언한 또 하나의 목표는 NAIL(National Assembly AI Library) 프로젝트다. 국회전자도서관을 국회AI도서관으로 전환하는 이 프로젝트는, 국회도서관이 3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쌓아온 4억 5천만 면의 방대한 디지털 원문을 활용하여 통합AI에이전트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황 관장은 “우리가 가진 학술 논문, 정책자료, 입법자료는 AI에게 최고의 식재료다. 이 양질의 검증된 데이터를 활용하면 일반 AI보다 훨씬 더 똑똑한 국가 대표 AI를 만들 수 있다”라고 확신한다.
NAIL 프로젝트는 황 관장이 직접 작명했다. ‘NAIL’은 영문 약칭이기도 하지만, 국회도서관의 ‘내일’(미래)이자 ‘내가 할 일’이라는 중의적 의미도 담겨 있다. 현재는 2027년 실행 전략을 담은 정보전략계획(ISP) 수립을 위한 예산 확보가 우선 과제이며, 빠르면 2030년 전후로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국회AI도서관이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황 관장은 “국회AI도서관을 구축한 나라가 없다. 우리가 선도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밝힌다. 오는 8월에는 20년 만에 서울에서 세계의회도서관 총회가 열려 30여 개국 120여 명을 초대해 NAIL 프로젝트를 세계에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황 관장은 AI 시대의 핵심 과제로 ‘디지털 포용’도 강조한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계층이나 정보 취약 계층이 지식정보의 혜택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배리어프리 환경과 원문 음성지원 서비스를 강화해 모두가 함께 누리는 지식문화 플랫폼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가짜뉴스와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일수록 공신력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국회도서관의 역할은 더욱 부각된다고 그는 강조한다.
경상북도 예천에서 서울로, 판사의 길에서 관장의 길까지
황정근 관장의 원동력을 이야기할 때 그의 성장 배경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경상북도 예천의 선비 정신이 살아있는 가풍 속에서 자랐다. 중학교 때 홀로 서울로 유학을 왔고,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객지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서울로 올라올 때 품었던 “한번 열심히 해봐야지”라는 다짐이 50년 동안 비뚤게 살지 않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회고한다. 공적인 일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부모님의 가르침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해군 법무관을 거쳐 1989년부터 판사로 임관했다. 각급 법원에서 근무한 후 2002년 대법원 재판연구관(부장판사)까지 역임했다. 2004년 43세의 나이에 판사직을 내려놓고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합류한 것이 그의 인생 터닝 포인트였다. 변호사가 된 이후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등 정치 관계법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며 국회와 정당 관련 소송을 많이 수행했다. 이후 법무법인 소백의 대표변호사를 거쳐 2023년에는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장을 맡는 등 굵직한 공적 활동을 이어갔다.
“변호사가 된 것이 좋았던 것은 언론의 자유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마음대로 말하고, 칼럼으로 쓰고, 글로 기부하는 삶. 그게 제 꿈이었습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 법률신문에 칼럼을 많이 썼는데, 지금은 공직이라 그게 안 됩니다. 여기서 나가면 또 하고 싶은 얘기 마음대로 할 수 있겠지요.”
책을 가까이하는 애독가로서 황 관장은 국회도서관에 취임한 후 매달 ‘월간 국회도서관’에 직접 칼럼을 쓰고 있다.
“Readers Lead, Leaders Read”라는 슬로건도 그가 직접 만든 말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리더가 되고, 리더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는 두 가지 진리를 병렬로 담은 이 슬로건은 국회도서관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어 있다.
성의정심(誠意正心)으로 조직을 이끌고, ‘퓨처 디자인(Future Design)으로 청년의 미래를 논하다’
황정근 관장이 조직 운영에서 가장 신경 쓰는 원칙은 ‘성의정심(誠意正心)’이다. 정성으로 일하고 바른 마음으로 책임을 다하는 태도가 그의 업무 철학이자 원칙이다.
그는 “공직자는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와 같다. 잠시 머무는 동안 소임을 정성껏 다하고 다음 주자가 바통을 이어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강조한다.
조직 문화에 대해서는 주역의 ‘휘정(彙征)’을 인용한다. 여럿이 함께 간다는 뜻의 이 말처럼, 모두가 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각자의 자리에서 쌓아 올린 노력을 서로 인정하고 응원할 때 국회도서관이 더욱 단단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다.
국회도서관의 정보서비스 성과 중 특기할 것은 ‘세계헌법정보’ 서비스다. 황 관장 임기 중 세계 118개국 헌법 원문과 96개국의 국문 번역문, 최신 개정 동향을 집대성한 이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개시했다. 또한 국회도서관이 2002년 주도적으로 발족한 한국학술정보협의회를 통해 현재 국내외 약 7,785개 회원기관과 정보 공유 및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청년 세대에 대해서도 황 관장은 깊이 고민하고 있다. 그가 최근 주목하는 개념은 ‘퓨처 디자인(Future Design)’이다. 이는 단순히 미래를 디자인한다는 뜻이 아니라, 현재 세대의 정책 결정이 미래 세대에게 짐을 지워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운동이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학술적으로 논의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개념으로, 황 관장은 이번 인터뷰를 통해 이 개념을 처음 국내에 소개했다.
“어른들이 우리 위주로 빚을 내서 쓰고 나중에 청년들에게 짐을 지우면 안 됩니다. 퓨처 디자인이란 30년 후 미래 세대를 기준으로 정책을 리뷰하자는 운동입니다. 청년들이 할 일은 꿈을 열심히 꾸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입니다. 어른들이 마인드를 바꿔야 합니다. 퓨처 디자인이 이루어지도록 청년들이 어른들에게 압력을 넣어야 합니다.”
국회도서관 개관 74년의 긴 역사 속에서 처음으로 법조인 출신 관장으로 취임해, 선제적 입법정보 제공 체계와 세계 최초 국회AI도서관이라는 두 가지 혁신의 기틀을 다지고 있는 황정근 관장. 임기를 마치는 그날,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고 의미 있는 토대를 마련한 관장으로 기억되고 싶다”라는 그의 바람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의 좌우명처럼, 정성스러운 마음과 바른 뜻으로 쌓아 올린 오늘의 토대가 국회도서관의 내일을 더욱 빛나게 할 것이다.
PROFILE
학력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졸업 △사법연수원 제15기 수료
주요 경력
△1983. 제25회 사법시험 합격 △1986.~1989. 해군법무관 △1989.~2002.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판사,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 판사,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 판사,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서울고등법원 판사,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 부장판사 등 역임 △2002.~2004. 대법원 재판연구관(부장판사) △2004.~2015.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2015.~2024. 변호사 황정근 법률사무소 및 법무법인 소백 대표변호사 △2023.~2024.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장 △2024.~2025. 10·29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비상임) △2024. 12.~현재 국회도서관장(제2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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