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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 법무사&행정사 “진실과 공감으로 ‘실질적 정의’를 세우는 통섭형 법률가로 거듭나다”

  • 이준영 기자
  • 입력 2026.05.3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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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wer lnterview - 박성기 법무사&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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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의 잣대는 차갑고 엄격하지만, 그 법을 다루는 이의 가슴은 다정해야 한다. 1986년 검찰 수사관으로 첫발을 내디딘 이래 대형 로펌 김앤장(Kim & Chang)을 거쳐 40여 년째 법조 외길을 걷고 있는 박성기 법무사는 따뜻한 법률가의 표본이다. 소년공으로 차가운 공장 바닥을 전전하던 시절부터 미국 FBI 내셔널 아카데미(NA) 수료라는 쾌거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은 환경은 결코 인간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環境不能折志)”라는 불굴의 개근 정신이다. 강남 자곡동에 박성기 법무사사무소를 열어 의뢰인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삼성동에 정상의(頂上義) 행정사 합동사무소를 설립해 빈틈없는 행정 법무를 지원하는 그는, 이제 법률 전문가라는 틀을 넘어 평화통일 운동과 공익 활동에 헌신하는 통섭형 리더로서 묵직한 울림을 던지고 있다. 타인의 삶을 구제하고 잃어버린 인간의 존엄을 되찾아 주는 일에 평생을 바친 박성기 법무사를 만나, 그의 치열했던 인생 여정과 흔들림 없는 경영 철학을 심도 있게 들어봤다.

 

 

오늘날 법률 서비스 시장은 고도로 세분화되고, 인공지능(AI) 기술의 등장으로 급격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 등장하더라도, 굳게 닫힌 사람의 마음을 열고 얽힌 이해관계의 실타래를 푸는 것은 결국 인간의 공감 능력진실한 소통이다. 박성기 법무사는 부동산 및 법인 등기, ·형사 소송, 기업 자문부터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국제 법무, 사단법인 설립, 출입국, 사실조사 업무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융합 서비스를 제공하며 의뢰인과 짙게 호흡하고 있다.

 

공직과 로펌이라는 양지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아온 그가 삶의 치열한 현장인 개인 법무사로 독립한 이유는 더 낮은 곳에서 시민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서였다. 2012년 호기롭게 무료 법률상담소를 열었던 그는, 그곳에서 여전히 법률가의 정형화된 잣대로 의뢰인을 재단하고 있는 자신의 한계를 발견했다. 진정한 법률 조력자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탐구가 선행되어야 함을 깨달은 것이다.

 

이에 그는 서울대학교 인문학 과정(IFP)에 진학해 역사와 철학, 문학을 섭렵하며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 서울대 IFP 총동창회장까지 역임하며 성찰의 시간을 보낸 그는, 마침내 의뢰인의 시각에서 사안을 바라볼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한 2014년 법무사사무소를 개소했다. 의뢰인이 겪는 답답함과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24시간 언제든 연락이 닿는 컨택 체제를 유지하며 의뢰인이 마음의 문을 열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주는 그의 소통 방식은 끈끈한 신뢰와 높은 승소율이라는 열매로 이어지고 있다.

 

소년공에서 융합형 법조인으로척박한 환경을 이겨낸 성실함의 루틴

업계의 존경을 받는 박성기 법무사를 만든 가장 강력한 무기는 어떤 환경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성실함의 루틴이다. 중학교 3학년 무렵 집안 형편이 기울면서 그는 상급 학교 진학 대신 부산 사상공단의 소년공으로 취업해야 했다. 경남 산청에서 차비조차 없이 부산으로 향하던 열네 살 소년에게, 사정을 눈치채고 모른 척 덮어준 버스 안내원의 배려는 세상의 따뜻함을 알려준 첫 번째 인연이었다. 부산의 낯선 거리에서 길을 안내해 주며 100원이라는 큰돈을 선뜻 쥐여준 박우상 지리 교사의 조건 없는 호의는 그의 가치관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대가 없는 도움으로 고비를 넘긴 그는 내 인생 역시 훗날 누군가의 길잡이가 되어 더불어 살아야 한다라는 소명을 가슴 깊이 새겼다.

 

새벽에는 서면 학원의 칠판을 닦아가며 검정고시로 학업을 이어갔다. 당시 그의 열정을 알아본 박홍철 강사가 너는 칠판 닦지 말고 그 시간에 공부만 해라며 남몰래 손을 꽉 잡아주던 온기는 혹독한 시절을 버티게 한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이후 그는 해병대 부사관으로 자원입대했다. 출발선이 다름에도 실력과 땀방울만으로 정직하게 평가받는 군대라는 공평한 사회에서, 그는 투철한 조국애와 희생정신을 체득했다. 강화도 일대를 관할하며 어민들의 고충을 듣고 민관 협력 체제를 구축했던 그의 떡잎은 그때부터 남달랐다. 제대 후 국가와 정의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공직이 가장 적합한 길이라는 확신으로 매진한 그는 1986년 검찰 수사관 시험에 단번에 최고 성적으로 합격하며 법조계에 첫발을 들였다.

 

스스로를 흙수저라 자조하며 시대의 벽 앞에서 희망을 잃어가는 청년들에게 감히 고백합니다. 저는 아예 수저조차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저가 없다고 인생의 길이 영원히 막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는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어머니의 숭고한 희생을 보며, 수저가 없으면 맨손을 사용하면서 나만이 가지고 있는 성실함의 루틴을 뼈에 새겼습니다. 어린 시절 선생님의 칭찬으로 시작된 평생의 개근습관이 결국 저를 일으켜 세웠듯, 환경은 결코 여러분의 의지를 꺾을 수 없습니다.”

 

검찰 20년과 김앤장 약 8,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 온 굵직한 발자취

1986년 검찰공무원으로 임용된 후, 박 법무사는 수동적인 수사관의 역할을 넘어 늘 한발 앞서 공익을 위한 길을 개척하는 혁신적인 모래시계 수사관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른바 공안 일지라 불릴 정도로 격동의 80년대 굵직한 시국 사건들을 최전선에서 겪어낸 그는 1987년 민주화의 도화선이 된 명동성당 농성 현장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시위대의 본질이 용공 분자가 아님을 판단하고, 상부에 4.13 호헌 조치 철회 의견을 개진하여 역사적인 6.29 선언을 견인하는 숨은 공로를 세웠다.

 

그의 시선은 수사에만 매몰되지 않고 조직 문화와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향했다. 1996년 대검찰청의 유휴시설을 개조해 결혼식장으로 탈바꿈시켰고, 1997년에는 백혈병에 걸린 동료를 돕기 위한 골수 채취 운동을 전개했다. 1998IMF 시절에는 금 모으기 운동을 가장 먼저 제창하여 위기 극복의 불씨를 지폈다. 이어 1999년에는 조선 시대 격쟁 제도를 벤치마킹하여 대검찰청 내에 민원실을 최초로 설치함으로써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높였다.

 

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변곡점은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이어진 미국 유학 시절이다. 늦은 나이와 언어의 장벽이라는 열악함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미국 UNH (University of New Haven) 형사사법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특히 이 시기 그는 UNH 지도교수인 마리오 개보리(Mario Gaboury), 세계적인 법의학자 헨리 리(Henry Lee), 예일대 해럴드 고(Harold Koh, 고홍주) 교수, 조지 라이언(George Ryan) 일리노이 주지사 등과 함께 인도주의적 사형폐지활동을 펼쳤다. 나아가 탁월한 학업 성취를 인정받아 미국 내 형사사법 분야 최고 권위의 학술 단체인 전미 형사사법 아너 소사이어티(The National Criminal Justice Honor Society)의 알파 피 시그마(Alpha Phi Sigma) 회원 자격을 얻으면서 석사학위를 수여받았았다.

 

나아가 2003년 세계 최고의 수사 기관인 미국 연방수사국(FBI) 내셔널 아카데미(NA) 212기에서 리더십 챌린지 과정을 추가 이수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시기는 단순한 선진 지식의 습득을 넘어, 그가 평생 품어온 불굴의 의지를 국제 무대에서 증명해 낸 치열한 시간이었다. 이때 쌓아 올린 글로벌 감각과 형사사법 네트워크는 이후 법무부 국제형사과 범죄인인도 주무관으로 국민주권을 지켜냈으며,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거쳐, 현재 사단법인 FBI NAA KOREA 상임이사로서 2025년 아시아 태평양 FBI 서울총회를 추진하는 강력한 자양분이 되었다.

 

의뢰인의 존엄을 회복하는 든든한 파트너, 법무사 제도의 혁신을 꾀하다

박 법무사가 가슴에 품고 사는 좌우명은 집안의 가훈인 접인춘풍 임기추상(接人春風 臨己秋霜)’이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대하고, 자신을 다스릴 때는 가을 서리처럼 매섭고 엄격하게 한다는 이 지침 위에, 그는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굳건한 경영 철학을 더해 의뢰인의 삶에 끝까지 책임을 다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이익만 좇는 상인이 아닌 공익 법무사라 칭한다. 진실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없기에, 의뢰인이 남들에게 숨기고 싶어 하는 뼈아픈 치부까지 편안하게 털어놓을 수 있도록 두터운 인간적 신뢰를 형성하는 것을 모든 업무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러한 끈끈한 소통 덕분에, 지난해 대규모 재건축 단지인 헬리오시티의 복잡한 도시정비법 위반 사건 승소, 진주아파트 재건축 조합의 성공적인 입주,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었던 데이터센터 건설 관련 기업 자문 등 굵직한 과제들을 연이어 명쾌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그는 개인의 영달을 넘어 법무사 업계 전체의 권익 신장과 대국민 편의 증진을 위해서도 헌신했다. 2018년 대한법무사협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120년 법무사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법무사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주도했다. 직역을 수호하려는 다른 단체의 반대와 압박 속에서도 국회의원들을 밀착 설득했다. 나아가 학계 권위자와 언론계 인사들로 구성된 시민위원회를 발족시켜 이 법안은 국민의 사법 접근성과 편익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라는 점을 끈질기게 소명하여, 만장일치 동의를 끌어내는 기적을 만들었다.

 

전 산업계를 강타한 AI 시대의 도래에 대해서도 그의 시각은 명쾌하다. AI의 계산 능력과 정보 처리량은 인간을 압도하지만, 법률 서비스의 본질인 인간의 창의성, 공감 능력, 전략적 판단은 결코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브런치스토리에 연재 중인 자신의 글을 AI 모델에 심층 분석시켜 본 결과, AI조차 그의 글에 배어있는 은유법의 연속성과 성실, 책임의 서사 구조를 짚어내며 그를 창과 방패의 정체성을 지닌 입체적인 작가로 평가했다. 기술의 발전을 유용한 도구로 선용하고 의뢰인과 깊은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데 집중한다면, 노력하는 법무사의 미래는 무궁무진하게 밝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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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를 넘어선 통섭형 리더’, 평화통일과 공익을 향한 끝없는 헌신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 한 번의 곁눈질 없이 달려온 박성기 법무사의 시선은, 이제 개인의 성공을 넘어 우리 후손들에게 더 살기 좋은 평화로운 사회를 물려주는 것을 향해 고정되어 있다. 그가 최근 가장 뜨거운 열정을 쏟고 있는 분야는 다름 아닌 평화통일 운동이다.

 

그의 통일 철학은 과거 서부전선을 굳건히 지키던 해병대 시절의 기억과 맞닿아 있다. 분단의 최전선에서 조국을 마주했던 청년 해병은 법조인이 된 후에도 한반도의 평화라는 거대한 화두를 놓지 않았다. 그는 법무부와 대한변호사협회가 주관하는 통일법 과정을 이수하며 통일 한반도의 법제도적 기반을 다졌다. 나아가 사단법인 DMZ에서 인문해설사로 활약하며 접경지역 트레킹을 통해 시민들에게 분단의 현실과 평화의 가치를 생생하게 전파해 왔다. 최근에는 한반도 평화통일 시민대학에 입학하여 체계적인 연대를 다지며, 실천하는 '평화통일 운동가'로서의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임진강과 한강의 물줄기가 만나는 조강(祖江)은 밀물과 썰물이 만나 맹렬하게 끓어오르는 기수역(汽水域)이자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이 자유롭게 교류해 온 생명의 터전이었습니다. 휴전선조차 그어지지 않은 채 공동 항행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음에도 분단이라는 인식의 틀에 갇혀 막혀버린 물길을 우리는 다시 열어야 합니다. 저에게 통일은 공허한 정치적 구호를 넘어, 남북이 단절을 극복하고 자원을 교류하며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한 가장 절실한 시대적 과제입니다.”

 

휴전선의 실체와 접경 지역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틈나는 대로 시민들과 트레킹에 나선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시 마을 법무사, 주민자치회 임원, 이어도 지키기 국민 운동, 라이온스 클럽 등 사회 곳곳의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긍정적인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딱딱한 법률 전문가의 외피를 벗어던지고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는 진정한 통섭형 리더의 길을 걷고 있다. 인기 플랫폼인 브런치스토리에 가독성 높은 생활 법률 정보와 철학이 담긴 에세이를 꾸준히 연재하며 소통하는 작가로서의 면모도 발휘하고 있다.

 

이 시대의 앞길을 개척해야 할 리더들에게 그는 멜 로빈스(Mel Robbins)의 저서 THE LET THEM THEORY(그대로 두라)를 강력히 추천한다. 통제할 수 없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 얽매여 고통받기보다, 타인의 자율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에 집중하라는 이 책의 메시지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결코 남을 탓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온 그의 삶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상처받은 얼굴로 찾아왔던 의뢰인이 짐을 덜고 환하게 웃으며 박 법무사님은 내 일처럼 성실하게 해주는 참 고마운 사람이라며 손을 맞잡아 줄 때, 보람을 느낍니다. 타인의 망가진 삶을 구제하고 억울하게 잃어버린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은,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있는 삶입니다.”

 

수저조차 없던 빈손의 소년공에서 시작해 법의 높은 문턱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짓는 힘없는 이들의 가장 든든한 방패가 되기까지. 자신의 이익보다 공익을 항상 먼저 생각하고, 피 말리는 치열한 법정 다툼 너머에 존재하는 의뢰인의 상처 입은 인간적 존엄을 온전하게 회복시켜 온 박성기 법무사. 40여 년간 하루하루 성실함으로 쌓아 올린 견고한 법률적 전문성과 인간을 향한 한없이 따뜻한 인문학적 통찰이, 앞으로 또 어떤 선한 나비효과를 일으켜 우리 사회를 평화롭고 정의롭게 변화시켜 나갈지 그 거대한 발걸음에 깊은 기대와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박성기 (朴成基), “진실과 공감으로 실질적 정의를 세우는 통섭형 법률가

- 박성기 법무사사무소·정상의(頂上義) 행정사 사무소·주한몽골인법률지원센터, 서울시 마을법무사

- 건국대 법대 및 행정대학원, 미국 UNH, 미국 FBI NAA(212), 서울대 IFP(10) 및 법무부·대한변협 통일법과정(14) 수료

- 미래에셋, 예금보험공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유림, K치과병원 등 자문

- )FBI NAA KOREA 상임이사, )가무악 Core 이사, )서울강남상공회 이사, )이어도 지키기 국민운동, 라이온스 개포클럽, 강남구 주민자치위원,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이사,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홍보대사

- 브런치스토리 작가(필명: 창과 방패) & 평화통일운동가(한반도 평화통일 시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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