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만드는 진짜 대화
기자 생활을 얼마 하지 않았을 때 필자는 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만이 강력한 무기라고 믿었다. 빈틈없이 매끄러운 질문, 막힘없이 이어지는 진행, 어색할 틈을 주지 않는 능숙함이 실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화 도중 침묵이 찾아오면 당황했다. 정적이 흐르는 순간이 마치 진행이 실패한 것처럼 느껴졌다. 빈 곳을 서둘러 채우는 것이 당연한 의무라고 여겼다.
그 착각이 무너진 것은 어느 의료기기 회사 대표와의 인터뷰에서였다. 인터뷰 전 비서로부터 전달받은 메모에는 경쟁사 이야기는 하지 말라, 수치는 공개 여부를 확인 후 결정한다, 사생활 관련 질문은 사절한다는 조건이 빼곡했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는 회사의 성과와 기술력을 막힘없이 이야기했다. 완벽하게 준비된 홍보 브리핑이었다. 한 시간이 지나도록 필자는 그 흐름을 깰 기회를 찾지 못했다.
그때 질문을 멈추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2초, 5초, 10초, 12초. 그가 다음 질문을 기다리며 필자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점점 불편해지는 것이 보였다. 15초쯤 됐을 때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 요즘 가장 힘든 게 뭔지 아세요?”
필자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직원들이에요. 창업할 때 같이 고생한 초기 멤버들이 하나둘 떠나고 있어요. 회사가 커지면서 그 사람들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홍보 브리핑에는 없는 말이었다. 그 말이 나오는 데 침묵이 필요했다. 서둘러 다음 질문을 꺼냈다면 그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꺼내기로 할 공간, 그것이 침묵이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날 이후 필자는 상대가 말을 멈추면 최소한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을 규칙으로 삼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 숫자를 세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나왔는지 모른다. 침묵을 다루는 방식은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다는 것도 그 과정에서 알게 됐다. 어떤 사람은 침묵을 견디지 못해 준비하지 않았던 진심을 꺼내고, 어떤 사람은 그 침묵 속에서 오히려 더 단단하게 방어벽을 세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그 침묵이 지나간 자리에는 반드시 무언가가 남았다. 준비된 말이거나, 준비되지 않은 진심이거나.
침묵은 인터뷰 현장에서만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한 M&A 전문가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중요한 인수 협상에서 상대측이 금액을 제시했을 때, 그는 그 숫자를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5초, 10초, 15초. 결국 상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 금액이 맞지 않으면 조정 가능합니다.”
그가 한 것은 침묵뿐이었는데, 그 침묵이 협상을 유리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침묵을 부정으로 해석해요. 내가 싫다고 하지 않았는데 상대가 먼저 싫은 것으로 받아들인 거예요.”
그의 설명이었다.
침묵에는 결이 다른 종류가 있다는 것도 배웠다. 상대가 다음 논리를 정리하는 생각의 침묵, 속내를 꺼낼지 말지 고민하는 결정의 침묵, 그리고 가장 다루기 어렵지만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 감정의 침묵이다.
과거 큰 실패를 겪고 재기한 한 젊은 기업인이 부도가 나던 날 밤 텅 빈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던 순간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말을 멈춘 적이 있다.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눈가가 빠르게 붉어졌다.
초보 기자 시절이었다면 이 무거운 정적을 깨기 위해 안달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수첩에서 손을 떼고 그저 따뜻한 시선으로 그를 조용히 응시했다. 10초, 20초. 그는 스스로 감정을 추스르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말했다.
“사실…… 그때 저는 생을 놓아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할 만큼 무서웠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 처음 해봅니다.”
인간의 감정은 물과 같아서, 억지로 휘저으면 탁해지지만, 가만히 두면 깊게 가라앉아 맑은 바닥을 드러낸다. 상대가 감정적으로 동요했을 때 함께 그 침묵을 공유해 주는 것, 그것은 백 마디의 유창한 위로보다 훨씬 더 거대한 공감이다.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가르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필자는 한 대학교 총장실에서도 느꼈다.
취업률로 이름난 그 대학의 총장은 “취업률 1위가 자랑스럽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에 잠시 침묵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자랑스러운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죠. 교수가 너무 많이 말하면, 학생이 생각할 공간이 없어요. 강의실에서 침묵이 흐르면 불편해하는데, 사실 그 침묵이 학습이 되는 순간입니다.”
강의실에서 침묵이 학습이 되는 순간이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돌아보면 필자가 인터뷰하면서 가장 많이 배운 순간도, 모른다고 말한 순간이었다. 정답을 먼저 내놓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먼저 던지고 침묵을 기다리는 사람이 결국 가장 깊은 이야기를 끌어낸다.
비워야 비로소 채워진다. 말을 아끼고 여백을 내어줄수록, 상대는 자신의 억눌렸던 이야기와 깊은 감정을 그 공간에 채워 넣는다. 말을 유창하게 하는 사람은 세상에 넘치고 흐른다. 하지만 침묵의 무게를 견디고 다룰 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리고 결국 그 드문 사람이 타인의 마음을, 그리고 대화의 판을 지배한다.
침묵을 견디는 훈련에는 요령이 있다. 상대가 말을 멈추면 속으로 다섯을 세는 것이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 다섯이 끝나기 전에 상대가 다시 말을 시작하면 그대로 기다린다.
다섯이 끝났는데도 상대가 말하지 않으면 그제야 입을 열어도 된다.
처음에는 그 다섯이 영원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훈련이 되면 자연스러워진다. 그리고 그 다섯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말을 유창하게 하는 사람보다, 침묵의 무게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결국 대화의 판을 지배한다는 것을, 필자는 그 다섯을 세는 시간 속에서 배웠다.
정진이
월간 리더스 발행·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