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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밀도》 최보영 저자 감정을 읽고 삶의 태도를 벼리는 성찰의 기록

  • 이지훈 기자
  • 입력 2026.05.3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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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 인터뷰 - 《상처의 밀도》 최보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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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같은 일을 겪고도 누군가는 금세 훌훌 털고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누군가는 그 자리에 오래도록 머물며 아파한다. 우리는 흔히 이러한 차이를 개인의 성격이나 의지의 부족, 혹은 예민함의 문제로 가볍게 치부하곤 한다. 그러나 예술경영을 전공하고 큐레이터이자 기자, 미식 칼럼니스트를 거치며 오랜 시간 사람과 공간, 그리고 관계의 이면을 세밀하게 관찰해 온 최보영 저자는 다르게 짚어낸다. 그녀는 상처가 크기가 아닌 밀도로 남는다고 말한다. 지난 211일 출간된 그녀의 에세이 상처의 밀도는 상처를 빨리 극복하라고 다그치거나 통제하는 대신, 내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천천히 들여다보며 감정의 결을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책이다. 겉으로는 늘 괜찮은 척하지만, 마음 안쪽에서는 자주 피로를 느끼고,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이들에게 그녀는 당신이 흔들리는 것은 나약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오래 버텨왔기 때문이라는 깊은 위로를 건넨다. 감정과 관계를 통해 자기 자신을 덜 몰아붙이고 더 정확히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펴낸 최보영 저자를 만나, 그녀가 길어 올린 단단한 삶의 태도와 회복의 문장들을 심도 있게 들어보았다.

 

 

예술경영을 전공하고 큐레이터로 활동했던 그녀의 독특한 이력은 사람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는 특유의 시선과 완벽하게 맞닿아 있다. 큐레이터 시절, 그녀는 단순히 덩그러니 놓인 작품 자체에만 몰두하지 않고, 그 작품이 어떤 공간에 놓여 있으며 관람객이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그 입체적인 맥락에 주목했다. 같은 작품도 어떻게 소개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히는 것을 숱하게 경험하며, 겉으로 드러난 표면 너머의 숨겨진 결을 읽어내는 훈련을 거듭했다.

 

이후 기자와 미식 칼럼니스트로 일하면서 이러한 치밀한 관찰은 자연스럽게 기록으로 이어졌다. 그녀에게 미식이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위가 아니라 한 접시의 음식 뒤에 숨은 요리사의 태도와 철학, 공간의 시간을 읽어내는 일이었다. 사람의 감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겉으로 드러난 1차원적인 반응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깊은 층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녀는 현장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이러한 끈질긴 관찰과 기록의 시간은 자연스럽게 상처의 밀도라는 한 권의 묵직한 책으로 응집되었다. “상처는 왜 사람마다 다르게 남는가?”라는 오래되고 근본적인 질문이 집필의 출발점이었다. 상처는 결코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각자가 살아온 시간과 관계, 겉으로 말해지지 못한 감정, 반복된 경험들이 겹치며 한 사람 안에 압축되는데, 그녀는 이 고유하게 압축된 감정의 층을 밀도라고 명명했다.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정답을 쥐여주려 하기보다, 스스로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조금 덜 오해하기를 바라는 진심이 집필의 가장 큰 동력이 되었다. 감정에서 관계로, 관계에서 회복으로, 회복에서 다시 삶의 태도로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책의 흐름을 통해, 자책의 뾰족한 질문이 내 마음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었구나라는 온기 어린 깨달음으로 바뀌기를 간절히 바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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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통제하는 대신 이해하는 법, 일상으로의 담담한 회복을 말하다

이 책이 지닌 가장 돋보이는 차별점은 감정을 무조건 없애버려야 할 골칫거리나 맹신해야 할 절대적 진실, 혹은 단순한 위로의 대상으로만 취급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녀는 감정을 하나의 객관적인 신호이자 데이터로 바라보며, 반복되는 반응의 패턴을 찬찬히 관찰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거창하고 난해한 심리 이론을 끌어오는 대신 지적, 위로, 공감, , 무례, 침묵, 끝맺음 등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관계의 장면들을 층위별로 섬세하게 풀어냈다. 나아가 그녀가 책을 통해 말하는 회복이란 드라마틱한 감정의 반등이나 극적인 극복의 서사가 아니다. 슬픔 속에서도 다시 밥을 먹고, 다시 누군가와의 약속을 지키며 담담하게 하루를 통과하는 그 작은 반복의 힘 속에서 사람이 조금씩 일상과 삶으로 돌아온다는 관점이 이 책의 가장 따뜻한 지점이다.

 

물론, 감정과 관계라는 예민한 주제를 글로 다루는 작업은 절대 녹록지 않았다. 그녀는 집필 과정에서 감정에만 얕게 머무르지 않고, 자칫 개인적인 하소연으로 흐르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분석적이고 차가운 태도로 치우치지 않도록 문장의 온도와 거리를 정교하게 조절하는 데 가장 큰 공을 들였다. 스스로 밝힌 글쓰기의 핵심 팁(Tip) 역시 화가 났다, 슬펐다, 서운했다에서 멈추지 않고 왜 그 감정이 생겼는지, 어떤 관계의 패턴과 연결되는지 한 번 더 들여다보는 것이다. 또한, 독자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떠올릴 수 있는 충분한 여백을 남기기 위해 많은 문장을 아낌없이 덜어내는 고된 훈련을 거쳤다.

 

이러한 정교한 노력과 배려 덕분에 책 출간 후 독자들의 반응은 무척 뜨거웠다. “내 마음을 대신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내가 그저 남들보다 예민한 줄만 알았는데, 오래 참아온 마음이 이제야 반응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녀는 특정한 세대를 독자층으로 한정하지 않지만, 20대와 30대에게는 치열한 비교와 불안 속에서 잃어버린 자기 속도를 되찾게 해주는 책으로, 40대와 50대에게는 평생 오래 참고 억누른 감정과 관계를 다시 건강하게 정리하는 책으로 가닿기를 소망한다. 단순한 위로를 덮어주는 것을 넘어, 독자들이 왜 힘들었는지 스스로 감정의 구조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고유한 해석의 언어를 쥐여준 셈이다.

 

태도는 말보다 오래 남는다자신만의 속도로 걷는 이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

그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는 글을 단순한 일차원적 표현 수단이 아닌 삶을 해석하는 근본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된 순간이다. 오랜 시간 기사와 칼럼을 쓰며 글이 곧 한 사람의 시선과 태도를 세상에 남기는 일임을 뼈저리게 체감한 그녀는, 잘 쓰는 화려한 글보다 정확하게 쓰는 글, 멋있게 보이는 글보다 오래 남는 문장을 쓰는 것을 자신의 작가적 목표로 확고히 삼게 되었다. “태도는 말보다 오래 남는다라는 그녀의 흔들림 없는 삶의 지침은 이러한 깊은 깨달음과 궤를 같이한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한 백 마디의 말보다 어떤 태도로 타인과 세상을 대하며 살아왔는지로 온전히 기억된다고 믿는다. 그녀 스스로도 일상에서 많이 걷고, 좋은 공간을 찾아 기꺼이 시간을 내며, 음식을 천천히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단단하고 유연한 태도를 묵묵히 다져나가고 있다.

 

이처럼 세밀하고 단단한 시선을 지닌 그녀는, 이른바 ‘3포 세대흙수저라 자조하며 깊은 불안의 늪에 빠져있는 청년 세대를 향해서도 그저 가벼운 위로 대신 묵직하고 실질적인 통찰을 건넨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쉽게 힘내라라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미 충분히 뼈를 깎듯 애쓰고 있는 사람에게 더 힘내라는 말은 위로가 아니라 또 다른 무거운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 당신이 느끼는 불안이 결코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남들보다 뒤처진 것 같고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것 같아도, 삶에는 저마다의 고유한 속도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속도를 무리하게 따라잡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잃지 않는 방식으로 계속 걸어가는 일입니다.” 희망은 거창한 확신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조금 덜 포기하는 작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그녀의 진심 어린 조언은, 치열한 오늘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는 수많은 청년과 현대인들에게 커다란 위안과 용기가 된다.

 

그녀의 궁극적인 목표는 유행처럼 가볍게 소비되고 금세 잊히는 글이 아니라, 어느 날 문득 내 마음이 길을 잃었을 때 독자가 다시 꺼내어 읽고 싶은 깊은 문장을 쓰는 것이다. 빠른 위로보다 깊은 이해를 주는 글, 단정하지 않지만 정확한 글, 차갑지 않으면서도 흐릿하지 않은 글을 통해 이 사람의 글을 읽으면 내 마음이 조금은 정리된다라는 굳건한 신뢰를 대중으로부터 얻고자 한다. 인터뷰를 맺으며 그녀는 독자들에게 자신을 너무 빨리 판단하지 말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감정은 늘 지금 막 벌어진 일에만 단순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오래전의 아픈 상처,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숨겨진 감정들, 반복된 관계의 피로한 경험들이 지금의 장면과 우연히 만나 다시 크게 움직이는 것이니, 흔들리는 자신을 결코 연약함의 증거로 섣불리 단정 짓지 말라는 것이다. 무수한 감정의 층위 속에서 나는 왜 이럴까라며 스스로를 다그쳐 온 이들이라면, 상처의 밀도를 이해함으로써 삶의 무거운 짐을 한결 덜어내는 그녀의 섬세하고 정확한 문장들이 그 어느 때보다 반갑고 따뜻하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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