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인터뷰 - 《상처의 밀도》 최보영 저자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같은 일을 겪고도 누군가는 금세 훌훌 털고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누군가는 그 자리에 오래도록 머물며 아파한다. 우리는 흔히 이러한 차이를 개인의 성격이나 의지의 부족, 혹은 예민함의 문제로 가볍게 치부하곤 한다. 그러나 예술경영을 전공하고 큐레이터이자 기자, 미식 칼럼니스트를 거치며 오랜 시간 사람과 공간, 그리고 관계의 이면을 세밀하게 관찰해 온 최보영 저자는 다르게 짚어낸다. 그녀는 상처가 크기가 아닌 ‘밀도’로 남는다고 말한다. 지난 2월 11일 출간된 그녀의 에세이 《상처의 밀도》는 상처를 빨리 극복하라고 다그치거나 통제하는 대신, 내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천천히 들여다보며 감정의 결을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책이다. 겉으로는 늘 괜찮은 척하지만, 마음 안쪽에서는 자주 피로를 느끼고,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이들에게 그녀는 “당신이 흔들리는 것은 나약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오래 버텨왔기 때문”이라는 깊은 위로를 건넨다. 감정과 관계를 통해 자기 자신을 덜 몰아붙이고 더 정확히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펴낸 최보영 저자를 만나, 그녀가 길어 올린 단단한 삶의 태도와 회복의 문장들을 심도 있게 들어보았다.
예술경영을 전공하고 큐레이터로 활동했던 그녀의 독특한 이력은 사람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는 특유의 시선과 완벽하게 맞닿아 있다. 큐레이터 시절, 그녀는 단순히 덩그러니 놓인 작품 자체에만 몰두하지 않고, 그 작품이 어떤 공간에 놓여 있으며 관람객이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그 입체적인 맥락에 주목했다. 같은 작품도 어떻게 소개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히는 것을 숱하게 경험하며, 겉으로 드러난 표면 너머의 숨겨진 결을 읽어내는 훈련을 거듭했다.
이후 기자와 미식 칼럼니스트로 일하면서 이러한 치밀한 관찰은 자연스럽게 ‘기록’으로 이어졌다. 그녀에게 미식이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위가 아니라 한 접시의 음식 뒤에 숨은 요리사의 태도와 철학, 공간의 시간을 읽어내는 일이었다. 사람의 감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겉으로 드러난 1차원적인 반응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깊은 층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녀는 현장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이러한 끈질긴 관찰과 기록의 시간은 자연스럽게 《상처의 밀도》라는 한 권의 묵직한 책으로 응집되었다. “상처는 왜 사람마다 다르게 남는가?”라는 오래되고 근본적인 질문이 집필의 출발점이었다. 상처는 결코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각자가 살아온 시간과 관계, 겉으로 말해지지 못한 감정, 반복된 경험들이 겹치며 한 사람 안에 압축되는데, 그녀는 이 고유하게 압축된 감정의 층을 ‘밀도’라고 명명했다.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정답을 쥐여주려 하기보다, 스스로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조금 덜 오해하기를 바라는 진심이 집필의 가장 큰 동력이 되었다. 감정에서 관계로, 관계에서 회복으로, 회복에서 다시 삶의 태도로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책의 흐름을 통해, 자책의 뾰족한 질문이 “내 마음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었구나”라는 온기 어린 깨달음으로 바뀌기를 간절히 바란 것이다.

감정을 통제하는 대신 이해하는 법, 일상으로의 담담한 회복을 말하다
이 책이 지닌 가장 돋보이는 차별점은 감정을 무조건 없애버려야 할 골칫거리나 맹신해야 할 절대적 진실, 혹은 단순한 위로의 대상으로만 취급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녀는 감정을 하나의 객관적인 ‘신호’이자 ‘데이터’로 바라보며, 반복되는 반응의 패턴을 찬찬히 관찰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거창하고 난해한 심리 이론을 끌어오는 대신 지적, 위로, 공감, 정, 무례, 침묵, 끝맺음 등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관계의 장면들을 층위별로 섬세하게 풀어냈다. 나아가 그녀가 책을 통해 말하는 회복이란 드라마틱한 감정의 반등이나 극적인 극복의 서사가 아니다. 슬픔 속에서도 다시 밥을 먹고, 다시 누군가와의 약속을 지키며 담담하게 하루를 통과하는 그 작은 반복의 힘 속에서 사람이 조금씩 일상과 삶으로 돌아온다는 관점이 이 책의 가장 따뜻한 지점이다.
물론, 감정과 관계라는 예민한 주제를 글로 다루는 작업은 절대 녹록지 않았다. 그녀는 집필 과정에서 감정에만 얕게 머무르지 않고, 자칫 개인적인 하소연으로 흐르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분석적이고 차가운 태도로 치우치지 않도록 문장의 온도와 거리를 정교하게 조절하는 데 가장 큰 공을 들였다. 스스로 밝힌 글쓰기의 핵심 팁(Tip) 역시 “화가 났다, 슬펐다, 서운했다에서 멈추지 않고 왜 그 감정이 생겼는지, 어떤 관계의 패턴과 연결되는지 한 번 더 들여다보는 것”이다. 또한, 독자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떠올릴 수 있는 충분한 여백을 남기기 위해 많은 문장을 아낌없이 덜어내는 고된 훈련을 거쳤다.
이러한 정교한 노력과 배려 덕분에 책 출간 후 독자들의 반응은 무척 뜨거웠다. “내 마음을 대신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내가 그저 남들보다 예민한 줄만 알았는데, 오래 참아온 마음이 이제야 반응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녀는 특정한 세대를 독자층으로 한정하지 않지만, 20대와 30대에게는 치열한 비교와 불안 속에서 잃어버린 자기 속도를 되찾게 해주는 책으로, 40대와 50대에게는 평생 오래 참고 억누른 감정과 관계를 다시 건강하게 정리하는 책으로 가닿기를 소망한다. 단순한 위로를 덮어주는 것을 넘어, 독자들이 왜 힘들었는지 스스로 감정의 구조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고유한 해석의 언어를 쥐여준 셈이다.
“태도는 말보다 오래 남는다”…자신만의 속도로 걷는 이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
그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는 글을 단순한 일차원적 표현 수단이 아닌 ‘삶을 해석하는 근본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된 순간이다. 오랜 시간 기사와 칼럼을 쓰며 글이 곧 한 사람의 시선과 태도를 세상에 남기는 일임을 뼈저리게 체감한 그녀는, 잘 쓰는 화려한 글보다 정확하게 쓰는 글, 멋있게 보이는 글보다 오래 남는 문장을 쓰는 것을 자신의 작가적 목표로 확고히 삼게 되었다. “태도는 말보다 오래 남는다”라는 그녀의 흔들림 없는 삶의 지침은 이러한 깊은 깨달음과 궤를 같이한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한 백 마디의 말보다 어떤 태도로 타인과 세상을 대하며 살아왔는지로 온전히 기억된다고 믿는다. 그녀 스스로도 일상에서 많이 걷고, 좋은 공간을 찾아 기꺼이 시간을 내며, 음식을 천천히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단단하고 유연한 태도를 묵묵히 다져나가고 있다.
이처럼 세밀하고 단단한 시선을 지닌 그녀는, 이른바 ‘3포 세대’나 ‘흙수저’라 자조하며 깊은 불안의 늪에 빠져있는 청년 세대를 향해서도 그저 가벼운 위로 대신 묵직하고 실질적인 통찰을 건넨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쉽게 ‘힘내라’라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미 충분히 뼈를 깎듯 애쓰고 있는 사람에게 더 힘내라는 말은 위로가 아니라 또 다른 무거운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 당신이 느끼는 불안이 결코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남들보다 뒤처진 것 같고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것 같아도, 삶에는 저마다의 고유한 속도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속도를 무리하게 따라잡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잃지 않는 방식으로 계속 걸어가는 일입니다.” 희망은 거창한 확신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조금 덜 포기하는 작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그녀의 진심 어린 조언은, 치열한 오늘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는 수많은 청년과 현대인들에게 커다란 위안과 용기가 된다.
그녀의 궁극적인 목표는 유행처럼 가볍게 소비되고 금세 잊히는 글이 아니라, 어느 날 문득 내 마음이 길을 잃었을 때 독자가 다시 꺼내어 읽고 싶은 깊은 문장을 쓰는 것이다. 빠른 위로보다 깊은 이해를 주는 글, 단정하지 않지만 정확한 글, 차갑지 않으면서도 흐릿하지 않은 글을 통해 “이 사람의 글을 읽으면 내 마음이 조금은 정리된다”라는 굳건한 신뢰를 대중으로부터 얻고자 한다. 인터뷰를 맺으며 그녀는 독자들에게 “자신을 너무 빨리 판단하지 말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감정은 늘 지금 막 벌어진 일에만 단순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오래전의 아픈 상처,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숨겨진 감정들, 반복된 관계의 피로한 경험들이 지금의 장면과 우연히 만나 다시 크게 움직이는 것이니, 흔들리는 자신을 결코 연약함의 증거로 섣불리 단정 짓지 말라는 것이다. 무수한 감정의 층위 속에서 “나는 왜 이럴까”라며 스스로를 다그쳐 온 이들이라면, 상처의 밀도를 이해함으로써 삶의 무거운 짐을 한결 덜어내는 그녀의 섬세하고 정확한 문장들이 그 어느 때보다 반갑고 따뜻하게 다가올 것이다.
BEST 뉴스
-
너울샘컴퍼니 김옥수 대표이사 “요양보호사 표준교재 100번이 가르쳐 준 삶의 지혜, 돌봄 교육으로 세상을 채우다”
생존을 위해 시작한 일이 재미가 되고, 그 재미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소명으로 이어진 사람이 있다. 너울샘컴퍼니 김옥수 대표다. 종합병원 간호사로 출발했지만 3교대에 지쳐 낮에는 개인병원 간호사로, 밤에는 강사로 일하며 삶과 타협하던 그녀는 10년이 넘는 요양보호사 양성 강의 현장에서 차곡차곡 내공을 ... -
이앤이케어(E&E CARE) 박현희 대표이사 “우물이 아닌 마을을 만드는 사람, ‘CARE’로 사람의 가능성을 연결하다”
디자이너로 출발해 교육자, 금융인, 경영 컨설턴트를 거쳐 지금은 대표이사이자 연구자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이앤이케어(E&E CARE)의 박현희 대표다. 누군가는 “한 우물을 파지 못한다”라고 했지만, 그녀는 오래된 친구의 한마디에서 삶의 방향을 새롭게 이해했다. “넌 우물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마을을 만들... -
셀라스(Selahs) 송진아 대표이사 브런치카페·갤러리·공연·독서 모임이 하나로 이어지는 문화 플랫폼
셀라(Selah)는 히브리어로 ‘잠시 멈추고 돌아보다’라는 뜻이다. 바쁜 일상에서 걸음을 멈추고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지어진 이름이 공간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부산 금정구 남산동, 약 600평 규모의 복합문화공간 셀라스(Selahs)를 이끄는 송진아 대표는 미국 Johns Hopkins U... -
서산시의회 김혜림 시의원 최연소 통장에서 도당 대변인 그리고 서산시의원으로, QR 공약집으로 주민과 소통하는 청년 정치의 새바람
일본 KIST 국제고와 캐나다 UBC를 졸업하고 IT 기업에서 근무하다 코로나 시기 귀국한 뒤, 2021년 예천동 최연소 통장으로 지역사회에 첫발을 디딘 인물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충남도당 대변인과 정책위원회 부의장을 거쳐 민선 9기 서산시의회에 입성한 김혜림 시의원이다. 비례대표가 아닌 지역구 선거에서, 3선에 ... -
《성찰과 사유의 여적》 김용섭 저자 “법은 인문의 뿌리에 닿을 때 비로소 온전한 규범이 된다”
법학자의 저서에 추도사와 묘갈명(墓碣銘)이 실리고, 비교만필, 시(詩)와 법정책 비평이 나란히 놓인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법학을 전공하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독일 만하임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법제처 공직 생활을 거쳐 경희대 법대와 전북대 로스쿨에서 오랜 기간 후학을 양성한 김용섭... -
㈜에프엠에셋 사과나무지사 김승주 지점장 씨앗을 심고 계절을 기다리듯, 고객의 노후를 함께 디자인하는 보험 전문가
꽃집 아줌마에서 플로리스트로, 원예치료사로, 그리고 보험 지점장으로. 그 모든 여정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에프엠에셋 사과나무지사 김승주 지점장이다. 대학에서 원예학을 전공하고 약 20년간 꽃집 수다쟁이 꽃집 아줌마를 운영하며 플로리스트로 살아온 그녀는, 사회복지법인 당진...
NEWS TOP 5
-
1
너울샘컴퍼니 김옥수 대표이사 “요양보호사 표준교재 100번이 가르쳐 준 삶의 지혜, 돌봄 교육으로 세상을 채우다”
-
2
이앤이케어(E&E CARE) 박현희 대표이사 “우물이 아닌 마을을 만드는 사람, ‘CARE’로 사람의 가능성을 연결하다”
-
3
셀라스(Selahs) 송진아 대표이사 브런치카페·갤러리·공연·독서 모임이 하나로 이어지는 문화 플랫폼
-
4
서산시의회 김혜림 시의원 최연소 통장에서 도당 대변인 그리고 서산시의원으로, QR 공약집으로 주민과 소통하는 청년 정치의 새바람
-
5
《성찰과 사유의 여적》 김용섭 저자 “법은 인문의 뿌리에 닿을 때 비로소 온전한 규범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