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umn - 정인택의 협상 칼럼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실제로 심리학의 연구 결과들도 첫인상이 인상 형성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사회생활에서 첫인상이 나중의 인상 평가에 미치는 영향을 초두 효과 또는 후광효과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사람과 처음 만날 때 좋은 인상을 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첫인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끝 인상이다. 초두 효과와는 달리 헤어질 때, 또는 계약 후의 사후 관리도 중요하다. 이처럼 시간상으로 끝에 제시된 정보가 인상 판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현상을 ‘최신 효과’(Recency Effect)라고 한다. 이러한 심리를 협상과 접목해 볼 수 있다.
협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은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요구한다’라는 점이다. 상대방에게 중요한 것은 요구가 아니라 욕구라는 점이다. 요구와 욕구는 빙산과 같다. 요구가 빙산의 일각이라면 욕구는 그것을 떠받치는 나머지 빙산과 같다. 수면 위로 드러난 일각만 움직여서는 빙산 전체를 움직일 수 없다.
협상은 두 개의 빙산이 만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둘 다 요구라는 빙산의 일각을 내세우지만, 사실 물밑에는 훨씬 더 거대한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 양쪽의 욕구를 파악하여 모두를 만족시키는 창조적 대안을 발견하는 것이 성공적인 협상의 지름길이다.
대부분의 욕구는 숨겨져 있다. 그래서 본인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협상이란 상대방의 이러한 숨겨진 여러 가지 욕구들을 자극함으로써 상대방의 본래 욕구를 희석하여 그를 통해 상대방이 지닌 융통성을 제어하는 과정이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공정, 공평, 명예, 박애, 정직, 부, 성공, 출세, 인간관계 등 다양한 가치가 지속되면서 서로 경쟁하고, 그 경쟁에서 최종적으로 이기는 가치가 그 사람의 행동을 지배한다. 한편, 사람의 욕구는 가치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본능에서 나오기도 한다.
기업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많은 리더는 협상을 ‘이기는 게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오늘날 협상은 단순히 거래를 성사시키는 과정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관계를 설계하는 기술이다. 특히 장기 파트너십, 공급망 관리, 글로벌 거래 등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상황에서는 ‘상대방을 이기는 협상’보다는 ‘함께 이기는 협상’이 전략적으로 더 유리하다.
성공적인 협상은 단지 조건을 조율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진짜 필요(needs)를 파악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이해 중심 협상(interest-based negotiation)’이다. 하버드 협상 프로젝트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사람을 문제에서 분리하고, 입장이 아닌 이해에 초점을 맞추며, 상호 이익을 추구하고, 객관적 기준을 활용하라”는 네 가지 원칙이 오늘날 협상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예를 들어, 가격을 두고 줄다리기하는 상황에서도 ‘왜 그 가격이 중요한가’를 묻는 순간, 전혀 다른 해결책이 등장할 수 있다. 상대가 가격에 민감한 이유가 예산 제한 때문이라면, 결제 조건을 유연하게 조정하거나 장기 계약을 통해 비용 부담을 분산시키는 식의 창의적 대안이 가능하다.
많은 리더가 협상에서 실수를 저지르는 이유는 ‘신뢰’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협상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며, 이때 신뢰는 거래의 리스크를 줄여준다. 신뢰는 갑을 관계를 뛰어넘어 진정한 ‘협력자’로 인식되도록 만든다.
특히 B2B 협상에서는 수치화된 조건 못지않게, “이 파트너와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감정적 판단이 계약 체결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협상에 앞서 관계 구축에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실용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협상에서 감정은 변수이자 무기다. 때로는 침묵이 협상에서 최고의 카드가 될 수 있다. 침묵은 상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심리적 압박을 유도하며, 말실수를 유도할 수 있다. 반면, 감정을 드러내야 할 순간도 있다. 단호한 감정 표현은 나의 기준선을 명확히 하고, 상대의 행동에 경고하는 신호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감정은 반드시 ‘관리’되어야 한다. 감정에 휘둘리는 협상가는 자신도 모르게 상대의 전략에 끌려다니며, 본래의 협상 목표를 잃기 쉽다. 리더는 감정을 ‘숨기거나 폭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제 협상은 더 이상 ‘내가 얻기 위해 상대가 져야 하는 게임’이 아니다. 관계의 시대, 연결의 시대에는 함께 이기는 협상이 오히려 더 강력한 성과를 만든다. 단기적으로는 조금 더 주는 듯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상대가 돌아오고, 소개가 이어지며, 신뢰 자산이 쌓인다.
협상은 상대방을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와 함께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리더의 전략이다. 그리고 그 전략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협상은 인간관계의 가장 농축된 형태다. 그리고 리더는 그 관계의 중심에서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계약서에 찍힌 도장은 협상의 끝이 아니라, 관계의 시작이다. 진짜 협상가는 거래 뒤에 숨은 ‘사람의 마음’을 읽고, 그 마음을 존중하며, 함께 나아갈 길을 만든다.
“Win-Win은 이상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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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협상 칼럼은 종료됩니다.

정인택
JNK지혜활용개발원장
